밥을 급하게 먹으면 체하는 것처럼, 생각도 허용량을 넘으면 담기 어려워지면서 결국 체하고 만다. 몸이 체하면 약이라도 있지만, 마음이 체하면 약도 없다. 나는 약도 없이 무제한 기다리기만 하는걸 참을 수 없어서, 체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몇 년마다 한 번씩 이렇게 떠나는 걸 해야만 하나보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이번 여행에서는 철저하게 나를 가두고 나와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멀리 사는 친구를 만나는 기대는 이미 접었다.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설레임도 버렸다. 아무도 안 만나도,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나를 제대로 비울 수 없다면 그건 실패한 여행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도착하자 마자 광안리로 향했다.
광안리에 도착
처음보는 부산바다였기에 도착하자마자 해변으로 향했다.
아, 바다소리!! 역시나 좋다.
내가 한 생각들..
부산바다는 인천바다와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인천바다는 '너 왜 왔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는데, 부산바다는 '이제야 왔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 나름대로의 해석인가? :)
광안리만 볼 수 없기에 커피숍에서 잠깐 몸을 녹이고 해운대로 향했다. 여기서는 광안리에서 했던 다양한 생각을 좀 더 말끔히 씻기를 바랬다.
벌써 밤이다 그리고 다들 커플이다
그림자까지도 커플이었던 해운대. 이곳에서는 그동안 내가 했던 연애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정확히 5년전, 1월 5일, 제주도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그 사람을 만났고, 다음날 신라호텔 아래의 넓은 해변을 걸었다. 그리고 소중한 기억을 놓치지 싫은 나머지 부서지는 파도 앞에서 운치있는 동영상도 찍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쓸쓸히 해변을 걷는다. 그리고 걸으면서 5년전 내 모습이 문득 떠올랐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떨군다. 그리곤 재연이라도 하듯 파도 동영상을 찍는다.
그 사람이 그리워서 눈물을 흘린건 아니다. 난 잊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같은 날 몸소 부산까지 내려와서 해변을 거닐며 무의식적으로 그 때의 추억을 떠올리는 내 자신이 가여웠다. 무의식이란 이렇게 무서운 걸까.
해운대에서 밤이 되도록 매서운 바닷바람과 마주했던 나는 배고픈 줄도 모르고 계속 걸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참 길다) 뒤 돌아서 멋진 건물들을 보면서 음식점 이름을 보고 나서야 배고프기 시작했고, 발 길이 닿는 대로 먹었다.
다음날, 태종대를 보러 일찍 나갔다. 사실 태종대는 어릴 적만 해도 대학교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곳이다. 그런 미안한 마음을 앉고 태종대에 도착했다.
태종대 비석?
태종대에 있는 유람선을 타기로 계획했기에 아래 선착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날씨가 맑아서 참 다행이다.
날씨는 맑았으나 정말 추운 바닷바람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어제 해변에서의 바람과는 다른 놈이었다. 몸이 마치 냉동실에 있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매서운 바람으로 숨도 제대로 못쉬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상황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손이 시린대도 불구하고 내가 주는 프링글스는 갈매기가 거부했다. (매정한 놈들 -_-;)
연하장을 전달할 겸 보기로 했던 '별총총'님을 남포동에서 만났다. 어색하기 쉬운 상황인데도, 재치있는 입담으로 분위기가 춥지 않도록 많이 애써주셨다. 후루룩 마셔도 될만큼 맛있는 완당을 체험하게 해주셨고, 맛 좋은 이태리 음식을 소개해주셨다.
그 분과 이야기 하면서 당당한 직업의식도 엿볼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2008년에 가장 취약했던 '계획과 실천'에 대해 깊이 배울 수 있었다. '책 100권 읽기'의 성공담과 '백록담 등반기'를 이야기 하실 때는 정말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당당하게 성공담을 이야기 하고 싶다라는 강한 감정이 생겨났다) 또한 이번에는 기타연주와 마라톤에 도전하신다고 하시니 사뭇 기대가 된다. 언젠가 기타연주를 미투케스트에서 들어보길 소망한다.
마음을 비우고 채운 것이 일시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그 분의 긍정적인 에너지라는 것에 참으로 감사했다. 그리곤 웃으면서 헤어졌다.
집에 가기 위해 다시 KTX에 몸을 실었다. 올 때는 복잡한 생각으로 위태했던 나였는데, 돌아가는 길은 가벼웠다.
다시 잘 할 수 있을까? 이번에 실패하면 돌이키기 힘든데, 잘 할 수 있겠지?
또 다시 넘어져서 힘들면 이번 여행처럼 스스로 응원해줄 수 있겠지.
자신있는 내 모습을 상상면서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깊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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